경기도 성남 고등지구에 위치한 ‘판교밸리제일풍경채’ 민간임대아파트의 분양전환 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법정 공방을 넘어 정치권 이슈로까지 확산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입주 당시 ‘시세 대비 저렴한 우선 분양’을 기대했던 임차인들은 당초 안내와 현격히 차이 나는 분양가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1심 법원은 계약서상 시행사의 가격 결정 자율성을 인정하며 임차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시행사가 임차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별 단지 분쟁을 넘어 민간임대주택 분양전환 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고가 분양가에 ‘화들짝’…엇갈린 약속과 현실
판교밸리제일풍경채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2017년 입주자 모집 당시 시행사의 홍보 내용과 2023년 하반기 제시된 분양전환 가격 간의 괴리에서 시작됐다. 당시 시행사는 4년 민간임대 후 우선 분양전환을 조건으로 입주자를 모집하며, “분양전환 시점에 시세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수준으로 분양이 가능하다”, “시세의 70~80% 선(약 8억 원 수준)에서 분양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을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이 임차인들의 주장이다. 실제 임차인들이 납부한 임대 보증금은 가구당 약 5억 5천만 원 수준으로, 당시 인근 단지 분양가가 6억 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보증금에 일정 금액을 더하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의무임대 기간 종료를 앞둔 2023년 하반기, 시행사는 전용 84㎡ 기준 약 11억 2천만 원 수준의 분양전환 가격을 제시했다. 일부 조기 분양된 가구의 거래 가격까지 포함하면 체감 분양가는 12억 원대에 이른다는 것이 임차인 측의 설명이다. 이는 당초 임차인들이 기대했던 8억 원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금액으로, 임대 보증금을 제외하더라도 수억 원의 추가 자금 마련이 필요해지면서 임차인들 사이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1심 법원, 시행사 손 들어줘…항소심 불씨 키운 ‘사모펀드 인수’
임차인들은 분양전환 가격의 적정성을 다투기 위해 2024년 3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시행사의 손을 들어주며 임차인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분양전환 자체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며, 계약서에 ‘분양전환 가격은 임대인이 정한다’는 조항이 명시된 점을 근거로 시행사의 가격 산정 자율성을 인정했다. 또한 법원이 산정한 감정가(약 10억 2천만~10억 3천만 원)와 시행사 제시 가격 간 차이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입주자 모집 당시의 ‘시세의 70~80% 수준 분양’ 설명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홍보성 안내에 불과해 법적 효력이 없다고 봤다.
임차인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 중이며, 항소심에서는 분양전환 가격 산정 기준의 명확성과 함께 민간임대주택 제도의 공공성 및 임차인 보호 범위를 다시 다툴 예정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분쟁의 배경으로 시행사의 지배구조 변화를 지목한다. 당초 부동산 디벨로퍼 HMG가 추진하던 사업은 2021년 5월 메테우스자산운용이 조성한 사모펀드가 지분 95%를 인수하며 시행사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임차인들은 지배구조 변경 이전에는 7억~8억 원 수준의 조기 분양전환 가능성이 논의되었으나, 최대주주 변경 이후 관련 논의가 중단되고 ‘투자 수익 극대화’가 우선시되는 구조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차인, 정치권 호소…시행사는 손배소로 ‘맞불’
갈등이 심화되자 임차인들은 사안의 공론화를 위해 정치권과 지자체를 찾았다. 임차인 연합 비대위는 지난달 성남시의회와 국회를 방문해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와 시민 재산권 보호를 호소했다. 성남시의회 강상태 의원은 “성남시가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 요구를 묵살하거나 미뤄서는 안 된다”며 비대위에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실 또한 분쟁 반복의 원인이 ‘분양전환가 산정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에 있다고 지적하며, 제도 개선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류 중인 법안 발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사인 메테우스자산운용은 지난 8일 임차인들을 상대로 세대별 약 3,8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시행사 측은 분양전환 절차 지연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고 있으며, 임차인들은 항소심을 앞두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려는 ‘전략적 소송’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법이 보장한 절차적 권리인 가처분 신청을 빌미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판교밸리제일풍경채 사례는 민간임대주택 제도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이 제도가 분양전환 가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입주한 임차인들에게 오히려 큰 혼란과 좌절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분양전환 여부와 가격 산정이 임대사업자의 재량에 상당 부분 맡겨져 있어, 입주자 모집 과정에서 사용되는 ‘우선 분양’이라는 표현이 실제로는 분양 가격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양측의 법적 공방과 정치권의 움직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특정 단지의 분쟁을 넘어 민간임대주택 제도의 공공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에네 기자 (ene@dailynod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