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충이 있습니다. 힘들게 체중을 감량해도 어느새 다시 불어나는 몸무게, 일명 ‘요요 현상’의 악순환이죠. 몸이 예전의 뚱뚱했던 상태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되돌아가려 하는 듯한 이 현상은 오랫동안 과학계의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과연 지방세포는 과거의 ‘비만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는 걸까요? 최근 덴마크 연구팀이 이 해묵은 논쟁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며, 건강한 체중 유지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지방세포가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고 건강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방세포, 살찌는 원리와 ‘비만 기억’의 그림자
우리 몸의 체중 변화는 대부분 지방세포의 크기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방세포는 마치 풍선처럼 부풀었다 줄었다 하며 몸무게를 결정하죠. 지방이 세포에서 빠져나가면 크기가 작아져 체중이 줄고, 다시 지방이 채워지면 커지면서 체중이 늘어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지방세포의 ‘개수’는 성인이 된 이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웨덴 카롤린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지방세포 수는 주로 20세까지 늘어나고 이후에는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지방세포 수가 많이 늘어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살이 찌기 쉬우며, 체중 조절이 더욱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만은 단순히 살이 많은 상태를 넘어, 지방조직에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기능 저하를 초래합니다. 이렇게 고장 난 지방조직은 지방을 안전하게 저장하지 못하고 간이나 근육 등 다른 장기에 지방을 쌓이게 해 당뇨병을 비롯한 다양한 대사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의학계에서는 그동안 요요 현상을 ‘체중 설정값(Set-point)’이나 ‘대사 기억’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몸이 예전의 뚱뚱했던 상태를 기억해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해왔습니다.
DNA 속 ‘스위치’ 추적: 지방세포 기억의 실체
이러한 비만 기억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덴마크 남부대 아틀라스연구소의 앤 로프트와 수잔 만드럽 교수 연구팀은 세포의 설계도라 불리는 DNA 수준에서의 변화, 특히 ‘후성유전학’적인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환경적 요인에 의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이 켜지거나 꺼지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패턴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연구팀은 고도비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체중 감량 전, 식단 조절을 통한 5~10% 감량, 그리고 수술 후 20~45% 감량 등 세 단계로 나누어 2년간 피하지방 조직을 추적 관찰했습니다. 단일세포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각 세포의 유전자 활동 변화를 정밀하게 비교한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5% 이하의 적은 체중 감량에서는 비만이었을 때 변했던 지방세포의 유전자 스위치 중 일부가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원래대로 복구되지 않고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요 현상을 일으키는 ‘세포의 기억’이었습니다. 이 기억이 남아있는 한, 조금만 과식해도 세포는 지방을 빠르게 저장하는 최적의 모드로 전환되어 쉽게 체중이 다시 늘어났습니다.
대폭 감량, ‘비만 기억’ 지우고 건강 되찾다
하지만 20% 이상 체중을 대폭 감량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연구 결과, 염증이 거의 사라지고 지방조직 내의 과도했던 면역세포 수가 정상 수준까지 가까워졌습니다. 면역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이 날씬한 사람과 유사한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죠. 면역세포 감소는 몸의 염증과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동시에 지방세포의 유전자 활동 또한 정상 패턴으로 회복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5~10%의 소폭 감량만으로도 ‘지방 전구세포’가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전구세포는 특정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말하는데, 이는 곧 우리 몸이 건강한 지방조직을 재생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 몸은 체중 감량을 위기로 인식하여 에너지가 다시 들어올 때를 대비해 전구세포를 미리 많이 만들어둡니다. 이는 남는 에너지가 간 같은 엉뚱한 곳에 쌓여 당뇨병 등을 유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이번 연구는 대폭적인 체중 감량이 단순히 몸무게를 줄이는 것을 넘어, 지방조직 자체를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대사’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방세포는 수명이 길어 몸의 비만 상태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다이어트 후에도 비어있는 풍선처럼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두었다가 지방이 빠르게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요 현상의 악순환을 끊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방세포가 과거의 비만 기억을 완전히 잊을 때까지 꾸준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하려는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에네 기자 (ene@dailynod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