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 시장 직접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다가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국의 새로운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만들어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미국 현지 생산 거점 확보를 통해 K-바이오 기업들은 관세 장벽을 우회하고, 동시에 중국 기업의 빈자리를 대체하며 글로벌 빅파마의 새로운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美 관세장벽 선제 대응, 현지 생산 거점 확보 박차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현지 공장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지난달 22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부터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공장을 2억8000만 달러(약 4147억원)에 인수하며 미국 내 첫 생산 거점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와 미국 록빌을 잇는 이원화된 생산체계를 구축해 글로벌 고객들에게 유연하고 안정적인 위탁개발생산(CDMO)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제조 수수료를 받는 CDMO 사업 특성상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미국 제약사들이 ‘해외 생산’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고 관세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는 강력한 수주 전략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약업체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굳이 관세까지 지불하며 해외 공장에 생산을 맡기지 않으려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라며 현지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생산·판매 구조상 관세가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9월 일라이 릴리로부터 인수한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공장에 총 1조 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관세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해소하고 미국 내 안정적인 생산·공급 체계를 구축하여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한다는 방침입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 인수를 통해 가장 빠르게 미국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공장 신설에 드는 시간을 8개월로 단축하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확보한 생산 물량으로 가동 즉시 수익을 내고 있으며, 특히 미국 내 희소성이 높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용 생산 라인은 차세대 항암제 시장의 거점이 될 전망입니다.
생물보안법, K-바이오에 새로운 기회…中 빈자리 메운다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지난달 발효된 생물보안법은 K-바이오 기업들에게 또 다른 기회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법안으로 인해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우려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으면서, 글로벌 빅파마들이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의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은 강력한 영업 무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CDMO 기업인 CBM(Center for Breakthrough Medicines) 경영권을 인수해 필라델피아에 세계 최대 규모의 CGT 생산 시설을 확보한 SK팜테코는 생물보안법으로 인해 발생한 우시바이오의 물량을 직접 수용하며 수주 잔고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SK팜테코는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우려까지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마크로젠 또한 미국 법인 소마젠을 통해 중국 BGI의 빈자리를 꿰차며 미국 정부의 대형 유전체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어, 중국 기업이 점유하던 미국 유전체 분석 시장의 파이를 그대로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SD바이오센서 역시 2022년 미국 진단 기업 메르디안을 인수하며 미국 내 수백 개의 병원과 진단센터로 이어지는 유통망과 생산망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 규제가 강화될수록 현지 제조망은 관세 장벽 속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높은 기술력과 미국 현지 고용을 통한 생산은 미국 제약사들이 백악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안심하고 물량을 맡길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관세 장벽과 규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입니다. 현지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진출과 영토 확장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에네 기자 (ene@dailynode.co.kr)
